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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어떻게 해야 해?
이렇게 결정적인 감정은 어떻게 해야 해?
-박지혜. 초록의 검은 비
,
무언가에 질리는 것은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도, 처음에는 재미있다고 하던 게임들도, 심지어는 사람까지도 질리기에 십상이었던 하나마키는 무엇이든 한 달을 채 가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먼저 다가오는 인연을 되돌려 보내지는 않는 사람이었기에, 그는 꽤 많은 여자에게 상처를 주었더랬다. 장난감도, 게임기도, 사람도 제멋대로 가지고 놀다가 싫증 나면 휙- 던져버리는 것이 그였으니, 그가 나온 중학교에서 아마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꽤 잘생긴 외모에 커다란 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하나마키는 운동부였다. 여자들의 마음을 사기에 아주 좋은 조건만을 가지고 있는 그였고, 오는 사람 되돌려 보내지 않는다는 점도 여자들의 고백을 이끌기에 좋은 점 중 하나였다. 소문으로는 하나마키가 여자를 자주 갈아치운다는 식으로 나 있는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기는 끊이지 않았다. 2학년이 끝나갈 때 즈음에는 여자들이 하나마키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고백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소문이 많이 나지 않았던 1학년과 2학년 초반에는 진지하게 다가왔던 여자아이들을 여럿 울렸다. 안 좋은 소문이 돌았음에도 하나마키는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는데, 자신이 먼저 다가간 적 없다, 같은 이유였다. 고등학교에서도 하나마키의 소문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인기 역시 끝나지 않았다.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남자의 고백을 받았다는 것. 마츠카와 잇세이. 이도 역시 인기가 많은 사람이었다. 하나마키와 같은 배구부의 부원이었고, 외모도 키도 모두 준수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하나마키에게 드는 한 가지 의문. 왜 마츠카와는 모든 고백을 거절하는 것이냐- 하는 것이었는데 하나마키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둘의 이성을 대하는 방식은 정반대였기 때문에, 하나마키가 마츠카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마츠카와가 하나마키를 고백한 날. 고백은 지극히 평범했다.
“좋아해.”
담백한 고백. 하나마키는 한 박자 대답을 고민했지만 역시 고백을 받아들였다. 오는 사람 막지 않는 것은 동성에게서도 같았다. 처음에는 마츠카와만이 하나마키를 사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마키는 마츠카와에게 빠져들었다. 자신을 진지하게 대해준 것은 마츠카와가 처음이라고 생각했고, 고백을 받아준 것이 한 달째를 넘어갈 때 하나마키는 마츠카와의 대한 마음이 여전하다고 느꼈다. 마츠카와의 곁에 있으면 여전히 설렜고, 그의 메일을 받을 때면 입이 찢어지도록 웃음이 났다. 하나마키에게는 많은 연애 경험이 있었지만, 이토록 좋아했던 사람은 실상 처음이었다. 만나게 된 지 두 달째가 넘어갈 즈음에는 마츠카와를 자신의 운명으로 여겼다. 그런 마츠카와를 자신이 질릴 것이라곤 생각도 못 할 때까지 그를 사랑했다. 하지만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예전에 지겹게도 느꼈던 감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하나마키는 그것을 부정했다. 마츠카와에게 질릴 리가 없다고, 부정하고,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이제는 두렵게 느껴지는 그 감정을 부정하며 도망쳤다. 그리고 질렸다는 감정이 확실해졌을 때, 마츠카와 곁에서 설렘을 느낄 수 없게 되었을 때, 더는 그의 메일을 받고 자연스레 웃음이 나오지 않게 되었을 때, 마츠카와에게 매달렸다. 마츠카와의 교복 셔츠를 잡고 매달려 울었다.
“꾸짖어 줘. 마츠가 좋아. 좋은데, 좋았는데. 확실히 좋았는데. 꾸짖어 줘. 더는 이런 마음이 생기지 않게, 질리지 않게.”
이젠 어떻게 해야 해?
이렇게 결정적인 감정은 어떻게 해야 해?
제게서 나오지 않는 답을 마츠카와는 알고 있을 것만 같아서 자신의 의문들을 터뜨려냈다.
“히로”
대답할 수 없었다. 눈물 탓에 말조차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마키는 마츠카와에게 대답해 줄 수 없었다.
하나마키는 확신했었다. 마츠카와에게 질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마츠카와를 영원히 좋아할 것이라고, 분명히 그때의 감정이 하나마키의 확신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질렸다는 것에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쌓아온 믿음들이 한 번에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그것을 무너지지 않게 하려고 놓은 지지대는 약하디약해 금방 무너질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쌓아 놓은 믿음이 무너질 때, 하나마키 역시 무너져 내릴 것이다. 마츠카와는 하나마키를 걱정했다. 하나마키가 두려워하는 것도, 눈물 흘리는 것도 모두 자신이 어찌 해줄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마키가 걱정되어서 그냥 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가여운 제 사랑을,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하나마키를 마츠카와는 어찌 해주어야 할까.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의 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는 말 그대로 그 뒤에 해결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히로”
여전히 하나마키는 대답해 줄 수 없었다.
마츠카와는 조용히 제게 안겨 울고 있는 하나마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하나마키의 울음이 그칠 때까지 아무 말 않고 조용히 머리만을 쓰다듬어주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런 마츠카와의 따뜻함에 하나마키가 한 번 더 울컥하여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는 것을 마츠카와는 알지 못했다.
이렇게 결정적인 감정은 어떻게 해야 해?
-박지혜. 초록의 검은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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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질리는 것은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다.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도, 처음에는 재미있다고 하던 게임들도, 심지어는 사람까지도 질리기에 십상이었던 하나마키는 무엇이든 한 달을 채 가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먼저 다가오는 인연을 되돌려 보내지는 않는 사람이었기에, 그는 꽤 많은 여자에게 상처를 주었더랬다. 장난감도, 게임기도, 사람도 제멋대로 가지고 놀다가 싫증 나면 휙- 던져버리는 것이 그였으니, 그가 나온 중학교에서 아마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꽤 잘생긴 외모에 커다란 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하나마키는 운동부였다. 여자들의 마음을 사기에 아주 좋은 조건만을 가지고 있는 그였고, 오는 사람 되돌려 보내지 않는다는 점도 여자들의 고백을 이끌기에 좋은 점 중 하나였다. 소문으로는 하나마키가 여자를 자주 갈아치운다는 식으로 나 있는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기는 끊이지 않았다. 2학년이 끝나갈 때 즈음에는 여자들이 하나마키에게 가벼운 마음으로 고백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소문이 많이 나지 않았던 1학년과 2학년 초반에는 진지하게 다가왔던 여자아이들을 여럿 울렸다. 안 좋은 소문이 돌았음에도 하나마키는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는데, 자신이 먼저 다가간 적 없다, 같은 이유였다. 고등학교에서도 하나마키의 소문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인기 역시 끝나지 않았다.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남자의 고백을 받았다는 것. 마츠카와 잇세이. 이도 역시 인기가 많은 사람이었다. 하나마키와 같은 배구부의 부원이었고, 외모도 키도 모두 준수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하나마키에게 드는 한 가지 의문. 왜 마츠카와는 모든 고백을 거절하는 것이냐- 하는 것이었는데 하나마키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둘의 이성을 대하는 방식은 정반대였기 때문에, 하나마키가 마츠카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마츠카와가 하나마키를 고백한 날. 고백은 지극히 평범했다.
“좋아해.”
담백한 고백. 하나마키는 한 박자 대답을 고민했지만 역시 고백을 받아들였다. 오는 사람 막지 않는 것은 동성에게서도 같았다. 처음에는 마츠카와만이 하나마키를 사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마키는 마츠카와에게 빠져들었다. 자신을 진지하게 대해준 것은 마츠카와가 처음이라고 생각했고, 고백을 받아준 것이 한 달째를 넘어갈 때 하나마키는 마츠카와의 대한 마음이 여전하다고 느꼈다. 마츠카와의 곁에 있으면 여전히 설렜고, 그의 메일을 받을 때면 입이 찢어지도록 웃음이 났다. 하나마키에게는 많은 연애 경험이 있었지만, 이토록 좋아했던 사람은 실상 처음이었다. 만나게 된 지 두 달째가 넘어갈 즈음에는 마츠카와를 자신의 운명으로 여겼다. 그런 마츠카와를 자신이 질릴 것이라곤 생각도 못 할 때까지 그를 사랑했다. 하지만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예전에 지겹게도 느꼈던 감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하나마키는 그것을 부정했다. 마츠카와에게 질릴 리가 없다고, 부정하고,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이제는 두렵게 느껴지는 그 감정을 부정하며 도망쳤다. 그리고 질렸다는 감정이 확실해졌을 때, 마츠카와 곁에서 설렘을 느낄 수 없게 되었을 때, 더는 그의 메일을 받고 자연스레 웃음이 나오지 않게 되었을 때, 마츠카와에게 매달렸다. 마츠카와의 교복 셔츠를 잡고 매달려 울었다.
“꾸짖어 줘. 마츠가 좋아. 좋은데, 좋았는데. 확실히 좋았는데. 꾸짖어 줘. 더는 이런 마음이 생기지 않게, 질리지 않게.”
이젠 어떻게 해야 해?
이렇게 결정적인 감정은 어떻게 해야 해?
제게서 나오지 않는 답을 마츠카와는 알고 있을 것만 같아서 자신의 의문들을 터뜨려냈다.
“히로”
대답할 수 없었다. 눈물 탓에 말조차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마키는 마츠카와에게 대답해 줄 수 없었다.
하나마키는 확신했었다. 마츠카와에게 질릴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마츠카와를 영원히 좋아할 것이라고, 분명히 그때의 감정이 하나마키의 확신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질렸다는 것에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쌓아온 믿음들이 한 번에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그것을 무너지지 않게 하려고 놓은 지지대는 약하디약해 금방 무너질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쌓아 놓은 믿음이 무너질 때, 하나마키 역시 무너져 내릴 것이다. 마츠카와는 하나마키를 걱정했다. 하나마키가 두려워하는 것도, 눈물 흘리는 것도 모두 자신이 어찌 해줄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마키가 걱정되어서 그냥 둘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가여운 제 사랑을,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하나마키를 마츠카와는 어찌 해주어야 할까.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의 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했다. 그 뒤는 말 그대로 그 뒤에 해결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히로”
여전히 하나마키는 대답해 줄 수 없었다.
마츠카와는 조용히 제게 안겨 울고 있는 하나마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하나마키의 울음이 그칠 때까지 아무 말 않고 조용히 머리만을 쓰다듬어주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런 마츠카와의 따뜻함에 하나마키가 한 번 더 울컥하여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는 것을 마츠카와는 알지 못했다.